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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정신으로살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

by 리플라워 2022. 10. 5.

출생
프로이트는 1856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 프라이버그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평생 그는 정신분석을 통해 자유인이자 비종교인으로 살고자 했으나 유대인으로서의 정서적 유대감은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정신분석 이론에는 유대인으로서의 소외됨, 거세됨, 열등감을 벗어버리려는 깊은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출생할 때 그의 아버지 제이콥 프로이트는 마흔살이었고, 스무살 연하인 젊은 세 번째 부인 아말리아 나탄존을 맞이하여 프로이트와 7남매를 낳았다. 프로이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제이콥의 첫 부인에게서 난 엠마누엘과 필립이 있었는데 이들은 제이콥의 세 번째 아내인 아밀리아와 나이가 거의 비슷했다. 

시대적 분위기
정신분석이라는 말은 아주 자연스럽게 프로이트를 연상시킨다. 특히 한국에서는 프로이트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으로 크다. 이는 정신분석의 창시자라는 이유로도 그렇지만 한국적 문화, 사회적 배경이 가진 위계적 , 학문적 질서와 가부장적인 권위가 결합한 한국인 정신분석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프로이트의 중요한 첫 발견은 마음의 구조를 이루는 요소 간에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 기억 등이 들어와 갈등을 유발하게 되면, 의식에서 배제되어 억압되고 신경증까지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신경학적인 증상들이 신체적 원인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원인에서도 올 수 있음을 명확히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적 갈등의 주된 요인은 성적 욕동에 있다고 보았고, 정신의 구조적 모델, 유아성욕론, 죽음의 본능, 에디푸스 콤플렉스, 꿈의 해석에 관하여 정신 분석의 주요 토대가 되는 이론을 세웠다. 사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남성적, 부계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는 이유로 시대의 흐름에서 상당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정신 분석을 시작하게 된 상황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19세기 후반에는 여성이 열등한 존재로서 생각됐으며 히스테리아는 여성의 자궁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되어 자궁의 기능을 해소 시키도록 진동기를 치료에 사용할 정도였다. 그리고 프로이트 이전에는 히스테리아 환자들을 고질적 꾀병 환자 내지 도덕적 문제가 있는 사기꾼으로 여겨졌는데 프로이트 당시에도 이들은 약화되거나 퇴행하여 회복되지 못하는 신경 체계나 해부학적 문제를 갖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아 발생에서 동기적, 심리적 요소에 무게를 둠으로 여성들이 당시에 받았던 열등한 치료적 대우를 걷어내는 역할을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형성 과정
프로이트는 신경생리학자로서 연구의에서 임상의로 전환하던 시기에 프랑스의 신경의학자인 장샤르고가 최면으로 히스테리아를 치료하는 것을 목격한다. 신경학적 증상을 보이는 히스테리아 환자에게서 최면의 암시를 통해 증상을 유도하기도 하고 상실시키기도 했다. 샤르코의 임상적 결과에 감명받은 프로이트는 이를 연구하며 자신의 이론과 이상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샤르코는 신경 체계의 교란은 신경 역동적 비정상에서 기인하며 평소 의식에서는 접근이 어려운 특정 생각이 신체적 증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요제브 브로이어와 함께한 히스테리아 연구에서 프로이트는 당시 여성들의 히스테리아 증상 이면에 의식 아래로 가라앉은 성적 트라우마 경험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됐다. 최면을 걸어 의식적 감시와 저항을 풀어주었을 때 환자들은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정서를 표출하면서 함께 증상이 사라졌다. 신경학적인 증상들이 신체적 원인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원인에서 올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내용은 1895년 히스테리아 연구에 의해 발표되었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의 환자인 베르타 파펜파임의 사례를 실었는데 그녀는 안나라고도 불리며 프로이트의 히스테리아 초기 연구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갖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마음의 구조를 이루는 요소 간에 특정 생각이나 감정, 기억 등이 들어와 갈등을 유발하게 되면 이는 의식에서 배제되어 억압되고 신경증까지 일으킨다고 추측했다. 그리고 역으로 억압된 내용을 말하게 함으로써 그러한 증상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의 문제에서 정신의 문제로
분석가가 환자의 최면 상태에서 알게 된 것을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닌, 환자가 스스로 그 내용을 알고 깨달아야 치료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최면 대신 자유연상을 사용하게 되었다. 자유연상을 통해 환자가 아무것도 의식에서 걸러내지 않고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원치 않거나 위장된 생각과 감정에도 직접 다가갈 수 있었다. 그 후 프로이트는 최면이 억압된 기억과 감정들에 접근하는 방법으로서는 한계를 갖는다고 보았다. 최면을 걸어도 문제가 되는 기억의 잔재는 환자의 일상 의식에 도달하지 못하고 최면 상태가 종료되면 함께 상실되고는 했는데 이는 환자의 마음에서 작용하는 방어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 자유연상도 지속해서 어려움에 부딪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애초에 환자의 마음에 해리되고 분열된 감정이나 생각을 만들어낸 힘이 같은 원리로 자유연상 또한 어렵게 한다는 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등을 유발하는 감정이나 소망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내용이 분석가에게로 옮겨지는 것도 자유연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결국 프로이트는 이런 저항과 전이야말로 치료과정의 방해가 아니라 치료과정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의식되지 못하고 억압되어 무의식화된 정신의 내용은 프로이트가 말한 신경증 증상을 유발할 뿐 아니라 꿈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공상이나 말실수 등도 같은 맥락에서 드러나게 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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